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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honey] 기다림으로 익은 순창의 손맛

  • 연합뉴스
  • 2025-04-30
  • 236
            
            [여행honey] 기다림으로 익은 순창의 손맛
'슬로 푸드' 본향에서 만난 봄

(순창=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전북 순창군은 발효 음식의 본고장이다.
순창은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계기로 더욱 주목받는 고장이 됐다.
순창은 이를 계기로 발효음식을 재해석한 특화 음식을 개발하는 등 발효음식의 메카를 넘어 미식과 건강 여행이 어우러진 종합 웰니스 관광지로 변모하고 있다.

◇ 봄의 속삭임, 순창의 발효 예술

봄소식이 궁금해 전북 순창군으로 향했다.
길고도 질겼던 겨울이 드디어 물러나고 봄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남쪽은 이미 이른 더위마저 느껴졌다.
순창 읍내를 가로지르는 경천과 양지천변에는 꽃잔디를 비롯한 봄꽃들이 아름다운 경치를 수놓고 있었다.
순창군은 발효 음식의 고장이다.
발효 음식은 몇 분만 기다리면 간단하게 '뚝딱' 만들어지는 패스트푸드와 달리, 오랜 기다림으로 익어가는 슬로 푸드다.
김치가 대표적이며, 우리가 매일 접하는 된장, 고추장도 그러하다.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군은 예로부터 장 담그기로 유명한 곳이다.
순창은 햇살이 따사롭고 매년 가을철이면 안개가 자주 끼는 고장이다.
안개가 끼는 날이 평균 77일에 달하기에 발효에 필요한 효모가 활동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었다고 한다.
순창군은 효모와 발효에 대한 연구를 위해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10만여 개의 우수 발효미생물 균주를 확보해 개발하고 있다.
순창의 장 담그기가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지난해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면서부터다.
순창에는 발효 음식과 관련된 전시와 교육, 체험 등이 이루어지는 순창발효테마파크도 들어섰다.
이곳은 한국관광공사로부터 2025년 강소형잠재관광지로 선정됐다.
이곳에서 고추장 등 발효 음식의 유래와 발전 과정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맛본 고추장 아이스크림은 달콤하면서도 끝에 살짝 매운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이런 대규모 테마파크보다 순창 곳곳에서 만났던, 발효 음식에 마음을 다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더 깊은 감동을 전해주었다.

◇ 명인 손끝에서 익어가는 장맛

순창발효관광재단의 소개로 대한민국 전통 식품 분야 강순옥 명인(64호·순창고추장)을 찾았다.
전통 장류 전문가인 강 명인은 순창고추장 제조 기능인이 모인 아미산 자락의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에 터를 잡고 활동하고 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어머니가 장 담그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는 그는 결혼 후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본격적으로 장 담그는 비법을 배웠다.
강 명인이 들려주는 고추장 이야기는 구수한 장 향기처럼 깊고, 오랜 세월을 간직한 전래동화처럼 매혹적이었다.
그는 "고추장은 구림면 만일사에서 처음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면서 "구림에서 태어나 구림으로 시집을 갔고, 또 그 만일사에서 정성껏 기도를 올린 덕분에 아들을 얻기도 해 고추장과는 남다른 인연이 깊다"고 말했다.

만일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된 고찰이다.
조선 건국 전 승려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를 위해 중건한 절이다.
만일사와 태조, 고추장이 얽힌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진다.
만일사를 찾아가던 이성계는 어느 농가에서 고추장 비빔밥을 대접받게 됐다.
마침 허기진 배를 달래준 고추장 비빔밥의 깊은 맛을 잊지 못한 이성계는 왕위에 오른 후에도 고추장을 진상하도록 명했다고 한다.
이것이 순창 고추장이 빛나는 명성을 얻게 된 계기였다.
강 명인은 정성스레 빚은 고추장 메주를 보여줬다.
고추장 메주는 보통 도넛 모양으로 빚어내는데, 콩과 멥쌀의 비율을 6:4로 조화롭게 배합한다.
강 명인은 "우리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소중한 장 문화가 잊히지 않도록 온 정성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간장, 된장, 고추장에는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인공적인 약제로 아미노산을 먹기보다 이렇게 건강한 전통 먹거리를 통해 필수 아미노산을 자연스럽게 보충해주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발효가 잘되니 술도 예술

발효 순창 발효 재단의 소개를 받고 순창읍내의 막걸리 제조 농가를 찾았다.
발효라고 하면 김치와 된장만 생각하기 쉬운데 여기에 술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고추장과 된장을 떠올리며 순창을 방문했는데 가볍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술의 핵심은 누룩(효모)이다. 순창은 공기 중의 효모가 다른 지역에 비해 무척 많은 고장이라고 한다.
장 담그기가 잘 되는 이유다.
이곳에서는 전통주 제조 과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막걸리 제조 체험, 시음 등의 활동이 이어졌다.
술 연구가 임숙주 씨 부부는 전통주가 어떤 식으로 발효를 통해 제조되는지를 쉽게 설명해 줬다.
곡물의 당분을 섭취해서 알코올을 만들도록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효모다.
효모는 15도 이상에서만 활동한다.
임 씨는 이 점을 활용해 100일 동안 발효시킬 때는 섭씨 14도쯤으로 서서히 저온 발효를 시킨다고 했다.
그러면 더 이상 효모가 당을 섭취하지 못하고 그대로 잠자고 있는 상태가 된다.
간단한 막걸리 제조 체험 뒤 시음 시간이 됐다. 무화과 탁주와 약주 등 다양한 술이 나왔다.
취재진 가운데는 와인 전문 언론인도 있었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당이 많이 남아있으면서 완성도 높은 술이 나올 수 있느냐"며 놀라워했다.
임 씨는 "100일 이상 두면 달콤하고 향기로운 맛이 나지 않고 군내가 나는 등 오염의 원인이 된다"면서 "100일까지 발효를 최대한 연장하면서 당분이 남아있게 하는 노하우를 찾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발효된 막걸리는 또 90일 동안 더 숙성을 거쳐 세상에 나오게 된다.
이 술은 국내 대표적 전통주 대회인 대한민국명주대상 2016년 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 발효 음식 개발은 '진행형'

순창은 발효음식의 본고장답게 음식 맛이 특별했다.
만족감이 높았던 것은 순창 고추장 양념을 입힌 '고추장 불고기'였다.
고추장 양념이 쇠갈비에 잘 스며들어 있었고, 함께 나온 오징어와 밑에 깔린 콩나물과 버섯과도 잘 어울렸다.
식당 바깥에는 때마침 벚꽃이 만개했다.
조식으로 먹은 다슬기탕은 국물이 시원했다.
식당은 조식을 위해 찾은 손님들로 만원이었다.
점심때는 순창 읍내 오래된 골목길에 자리 잡은 두붓집에 들렀다.
가게 앞에 현대 포니 2 픽업트럭이 세워져 있어서 옛 정취가 더했다.
포니 트럭은 30년간 3대에 걸쳐 두부를 만들어오고 있다는 이 집의 전통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모두부와 순두부 둘 다 맛있었는데, 양념 없이 하얀 국물 그대로 내오는 순두부가 고소했다.
'순창 삼합'은 홍어가 없는 메뉴여서 취재진을 놀라게 했다.
3대 특산품인 고추장, 간장, 된장(청국장) 등 전통 장맛을 독특하게 재해석한 특화 음식이라는 평가다.
미슐랭 별 하나를 받은 유현수 셰프와 협업으로 개발한 순창의 대표 음식이다.
된장으로 맛을 낸 삼겹살과 고추장소스를 얹은 장어를 씻은 묵은지에 싸 먹는 음식이다.
쌈을 제대로 싸서 입 안으로 넣으면 깔끔한 묵은지의 맛과 전통적인 구수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매콤한 장어 맛과 청국장 소스로 맛을 낸 부드러운 식감의 돼지고기 맛이 입안을 기름지게 한다.
묵은지의 새콤한 맛이 기름진 돼지고기의 맛을 잘 잡아준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5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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